
[매일안전신문] 차가운 보도블록에 쓰러져 의식이 없는 근로자가 있었다. 구급차가 왔으나 이내 동료로 보이는 사람이 돌려보냈고, 그는 하루 후에 병원에 가서 응급수술을 했으나 뇌 손상으로 인해 기억을 상실하고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상담 중에 있었던 일이다. 사실관계를 들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업주가 회식 중에 근로자를 폭행했다고? 심지어 구급차를 돌려보내고, 사업주 집에서 하루를 꼬박 새운 다음 병원에 갔다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사건 경위였다. 형법상 폭행죄 및 근로기준법상 어떠한 이유로도 사업주는 근로자를 폭행할 수 없기에 중죄였으나 문제는 산업재해 처리였다. 사업주는 이미 교도소에 있었고, 증언해 줄 근로자들은 대부분 없었다. 아주 작은 회사였기에 회식인지 아닌지도 입증이 어려웠으나 다행히 주변 증언들과 가족들의 노력으로 인하여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 처리를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산업재해 처리 과정 중 근로복지공단이 요구한 서류였다. 일반적으로 제 3자의 행위로 인하여 근로자가 재해를 당한 경우에는 ‘제3자의 행위에 따른 재해발생신고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고, 주로 출퇴근 재해나 출장 중 사고로 인하여 제3자가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경우 근로복지공단은 구상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이 서류 제출을 요구한다. 이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사업주이므로 당사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출해야 하냐고 하였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일단 제출을 요구했다. 제 3자이면서 당사자일 수가 있을까? 일견 모순되나 일단 산업재해 처리가 중요했으므로 교도소에 있는 사업주에게 동의를 받아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상당인과관계가 성립하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보험급여를 근로자에게 지급한다. 이 경우 보험가입자는 사업주가 되며 보험료를 내는 당사자이므로 일반적으로 근로복지공단에서 근로자에게 보험급여를 지급하더라도 근로복지공단은 사업주(보험가입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이미 지급한 보험급여를 청구할 수 없다. 만약 제3자로 인한 경우라면 제3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한다. 재해자가 가지는 손해배상청구권과 산재보험 수급권이 이중보상되는 경우를 방지하고 제3자의 책임면탈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다만, 예외적인 경우에 근로복지공단이 근로자 또는 사업주에게 이미 지급한 보험급여를 청구하는 경우가 있다.
첫 번째로 근로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산재처리 전에 민사소송 또는 민사합의를 통하여 배상을 받은 경우이다. 이 경우에 요양급여, 휴업급여, 장해급여 등 산재법상 보험급여와 민사배상금으로 받은 금액이 중복 보상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고자 함이다. 이 경우에는 손익상계가 안 된 상태로 민사배상금을 받았으므로 되도록 산재처리 이후 민사배상금을 수령하는 것이 손해보전에 효과적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구상권 행사라기 보다는 부당이득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구상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보험 가입 당사자인 사업주가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위에 든 사례이다. 사업주의 고의나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있는 범죄행위로 가해를 한 경우에는 제 3자가 아닌 보험가입자임에도 불구하고 구상권을 행사한다. 이는 사업주의 고의로 인하여 일어난 사고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지출한 보험금을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사업주는 고의로 근로자에게 피해를 입히더라도 근로복지공단에서 보상을 해주는 즉, 범죄행위를 보호해 주는 셈이 되므로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구상권을 행사한다.
세 번째는 법인 대표이사의 가해행위로 소속 근로자가 재해를 당한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보험 가입자가 법인 그 자체이고 대표이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므로 법인과 대표이사 사이에는 산재보험 관계가 존재하지 않아 제 3자에 해당하므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대표이사의 사적행위(고의)에 해당할 경우에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고, 과실이 경합된 경우라면 사용자 책임 법리에 따라 구상권 행사가 어려울 것이다.
위와 같이 보험 가입자나 피보험자라고 하더라도 구상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구상권을 행사하는 법리적인 측면은 일견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근로자의 경우에는 사업주가 공상처리(산재처리 전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들이 많아 충분한 안내가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사업주의 사적이거나 직접적인 가해행위로 인한 산업재해의 경우에는 곧바로 구상권을 행사하면 될 것이지 재해자에게 ‘제3자의 행위에 따른 재해발생신고서’ 등을 요청하는 것은 행정적 낭비로 사료 된다. 이는 피해를 입은 근로자에게 신속한 산재 보상을 위하여 내부규정 등을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
법무법인 더보상 김선명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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