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보도 ‘자극적 장면·동의 없는 촬영’ 줄인다…기자·데스크 체크리스트 마련

이상훈 기자 / 기사승인 : 2026-09-09 15:50:44
  • -
  • +
  • 인쇄
평상시부터 사건 발생 이후까지 4단계 구분…기자·데스크·언론사별 실천 항목 제시
▲ 재난별 트라우마 관점 문제 보도 비율(중복 가능) [보건복지부 제공]
[매일안전신문=이상훈 기자]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는 10일 재난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기자와 데스크, 언론사가 단계별로 점검해야 할 행동기준을 담은 재난보도 체크리스트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뉴스 이용자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보도에 수정이나 삭제, 보완 등을 요청할 수 있는 ‘재고 요청 양식’도 함께 마련했다. 

 

이번 체크리스트는 재난보도 과정을 평상시, 사건 발생 직전인 투입 전, 사건 발생 중인 현장 취재, 사건 발생 이후의 보도·후속취재·복귀 등 4단계로 나눴다. 각 단계에서 지켜야 할 항목을 기자와 데스크, 언론사 등 수행 주체별로 구분했으며, 현장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PDF 형태로 제작할 예정이다. 

 

기자가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는 자신의 신체·심리 상태와 현장의 위치·규모·위험요소를 확인해야 한다. 데스크는 투입 기자의 과거 트라우마 경험과 현재 스트레스·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2명 이상 편성과 교대근무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안전용품과 비상연락망, 숙소와 이동수단을 확보하는 항목도 포함됐다. 

 

현장 취재 단계에서는 재난 당사자에 대한 접근 방식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기자는 취재원의 신체·심리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자신의 신분과 촬영계획, 영상·발언 등이 보도되는 범위를 설명한 뒤 동의를 받아야 한다. 멍함이나 무반응, 진술 불일치 등 취재가 어려운 상태가 확인되면 취재를 연기하고, 원치 않는 위로나 행동·감정에 대한 판단도 하지 않도록 했다. 

 

취재 이후에도 기준이 적용된다. 후속 취재는 당사자가 안정된 상태인지 확인한 뒤 다시 동의를 받아 진행하고, 취재 장소와 시간, 동반자를 당사자가 선택하도록 했다. 재난 상황을 반복적으로 회상하도록 질문하거나 장면을 연출하는 행위는 피하도록 했으며 피해뿐 아니라 복구 노력과 회복 과정도 보도 항목에 포함했다. 

 

이번 연구는 2024년 실시된 ‘트라우마 예방관점 재난보도 현황조사’의 후속 연구다. 기존 연구가 재난 발생 당시 보도를 중심으로 분석했다면 이번에는 추모일 보도까지 범위를 넓히고, 기존 분석틀을 개정해 뉴스 내용뿐 아니라 이미지·영상까지 점검했다. 재난경험자와 일반인, 언론인을 대상으로 초점집단면접과 심층면접도 진행했다. 

 

분석 대상은 12·29 여객기 참사와 경북·경남·울산 초대형산불의 발생기 보도,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와 12·29 여객기 참사 1주기 보도다. 신문 5곳과 방송 3곳 등 8개 매체에서 재난 기준일을 중심으로 2주간 보도된 기사와 방송 462건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신문은 326건, 방송은 136건이었다. 

 

분석 결과 재난 발생 직후와 추모기에는 문제 보도의 유형이 다르게 나타났다. 발생기에는 자극적인 표현과 충격적인 장면이 두드러졌으며, 분석 대상 가운데 해당 문제 비율은 최고 30.6%였다. 추모기에는 유가족의 오열이나 격한 감정을 여과 없이 담은 장면이 최고 50%로 나타났다. 

 

영상 분석에서는 같은 유형의 화면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양상도 확인됐다. 경북·경남·울산 초대형산불 보도 영상 56개는 불에 타는 모습과 연기, 인물 인터뷰, 타버린 집과 산·구조헬기 등 3개 유형으로 분류됐다. 12·29 여객기 참사 발생기 영상 49개는 추락한 비행기와 잔해, 합동분향소, 사고 현장 등 7개 유형으로 나뉘었다. 연구에서는 군집 수가 적을수록 동일한 유형의 화면이 반복 노출된 것으로 분석했다. 

 

재난을 경험한 유가족들은 인터뷰에서 기사 내용 자체뿐 아니라 동의를 받지 않은 촬영과 반복적인 개별 접촉을 주요 문제로 지적했다. 일반 뉴스 이용자는 자극적인 보도가 뉴스 회피로 이어지고 후속 보도가 부족하면 시민의 관심이 낮아질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언론인들은 트라우마 관점의 보도가 실무 기준으로 자리 잡기 위해 조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뉴스 이용자를 위한 ‘재고 요청 양식’에는 문제 보도의 매체명과 기사 제목, 보도 시점 등을 적은 뒤 개인정보·사생활 침해, 자극적 장면·음향의 노출·반복,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표현, 낙인·비난 등의 문제 유형을 선택하도록 했다. 해당 문장이나 장면을 특정해 수정·삭제·보완 등을 요청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이번 체크리스트는 2022년 국가트라우마센터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공동으로 마련한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보도 가이드라인’을 취재 현장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후속 작업이다. 기존 가이드라인은 준비·취재·보도 단계에서 재난 당사자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 취재, 사생활과 인격 존중, 심리적 고통을 가중할 수 있는 표현과 자료의 사용 주의, 기자의 신체·심리적 안전 관리 등을 제시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지난해 12·29 여객기 참사 당시에도 해당 가이드라인을 별도로 안내하며 재난 당사자와 기자, 뉴스 이용자에게 직·간접적인 트라우마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도 과정에서 유의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2025년 발표한 앞선 재난보도 현황조사에서는 재난 당사자 보호와 윤리적 보도, 구조적 원인을 다루는 심층보도, 지속적인 후속보도, 언론인의 트라우마 관리와 관련 교육 등을 개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번 연구는 이를 바탕으로 점검 범위를 추모기까지 확대하고 실제 취재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단계별 항목을 마련한 것이다. 

 

남윤영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재난 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도 양상이 변화하는 만큼 가이드라인도 세분화되어야 함을 알 수 있었다”며 “특히 추모일마다 재난경험자가 다시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현장의 기자와 데스크가 재난보도 체크리스트를 활용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매일안전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