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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송규 (사)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기술사.공학박사 |
화재안전 기준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한 단계씩 높아져 왔다. 아파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이 점차 확대되면서 새로 지어지는 공동주택의 화재 대응 수준은 과거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제도가 발전하는 속도와 이미 지어진 건축물의 변화 속도가 같을 수는 없다. 현재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오래된 아파트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는 또 다른 안전정책의 과제로 남아 있다.
국내 아파트는 약 1천200만 가구에 달한다. 이 가운데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가구는 668만 가구다. 약 1천200만 가구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전체의 55.7%에 해당한다. 스프링클러가 없는 가구가 설치된 가구보다 오히려 많다는 점에서 단순한 설비 문제가 아니라 공동주택 화재안전 관리체계 전반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들 상당수는 현재보다 완화된 기준이 적용되던 시기에 건축된 아파트다.
스프링클러 기준은 1990년 7월 처음 마련됐다. 당시에는 16층 이상 공동주택의 16층 이상에 설치하도록 했다. 이후 2005년 1월부터 11층 이상 건축물의 모든 층으로 범위가 확대됐고 2015년 1월 경기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 화재를 계기로 다시 강화됐다. 현재는 2018년 11월 28일부터 시행된 기준에 따라 6층 이상 건축물의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돼 있다. 문제는 기준이 높아질 때마다 새 건축물에는 적용되지만 기존 아파트까지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기존 공동주택의 설비를 현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스프링클러를 새로 설치하려면 수조와 배관을 추가해야 하고 공사 과정에서 입주민이 거주 공간을 비워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비용 역시 큰 부담이다. 기존 아파트 전체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데 약 57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모든 공동주택에 일괄적으로 같은 설비를 적용하는 방식은 현실적인 제약이 크다. 그렇다고 과거 기준을 충족했다는 이유만으로 현재의 안전 수준까지 충분하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기존 아파트의 특성을 고려한 단계적인 접근이다. 소방청은 스프링클러가 없는 기존 주택의 대안으로 자동확산소화기 보급을 추진하고 있다. 일정 온도에 도달하면 소화약제가 자동으로 분사되는 방식으로 중앙소방학교의 11차례 실험에서는 방 하나 정도 규모의 화재에 진압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는 올해 약 3만8천 가구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향후에는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노후 아파트와 취약계층 등 우선순위를 정해 보급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화재안전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다. 이미 사람이 살고 있는 건축물의 안전 수준을 어떻게 현재에 맞게 끌어올릴 것인지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모든 노후 아파트에 동일한 설비를 한꺼번에 적용하기 어렵다면 화재 위험과 건축물의 노후도 등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효성 있는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과거에는 적법했던 건축물이더라도 현재의 위험까지 그대로 과거 기준에 맡겨둘 이유는 없다. 새로운 아파트의 안전기준을 높이는 것과 함께 오래된 공동주택에 남아 있는 화재안전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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